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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양식 가운데 '로코코'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17세기 바로크 미술과 18세기 후반 신고전주의 미술 사이에 유럽에서 유행한 양식이다. '로코코'라는 말의 의미는 프랑스어의 '로카유(조개껍질)'에서 유래된 것이다. 본래는 당시 귀족사회의 생활을 미화하기 위하여 고안된 장식 양식 내지 공예품에 대해 쓰인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이 시대의 프랑스 미술, 나아가서는 유럽 미술 전반에 걸친 양식개념이 되었다. 이 양식은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세련미와 화려함에 관심을 갖는다. 아무리 단순하고 평범한 사물이라 할지라도 로코코 화가의 손에 들어가면 화려하고 세련된 색채를 가진 그림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는 완전히 성숙하여 생업이었던 목공소 문을 닫고 역사의 큰바다에 첫 발을 내 딛는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후 사람들은 예수야말로 육신의 아버지 없이 태어난 하느님의 화육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불과 천 년도 못 되어 사람들은 예수를 완전한 신이며 완전한 인간으로 믿게 되었다. 또한 이천 년이 못 되어 예수는 그의 살과 피를 기적적으로 먹고 마셨다고 믿는 수 많은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예수의 친구들과 친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예수가 비상한 재능을 지녔다고 생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결국 예수는 로코코화 된 것이다. 루벤스와 같은 유능한 화가에 의해 예수는 화려하고 세련되게 다시 태어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고상하고 아름다운 예수를!

 

머리 빡빡 깎고 인자한 구석이라곤 한치도 없어 보이는 지성 담론의 폭력자, 도올 김용옥 교수가 텔레비전에 나와 추천 하길래 한 번 보았던 영화,<Garden of Eden>. 몇 년이 지나서야 이 무료한 -마치 홍상수 영화를 보는 듯한- 영화를 다시 본다.

 

1947년. 팔레스틴 사해에서 오사마 빈라덴의 막내 아들을 닮은 한 소년이 사해 문서를 발견하면서 이 영화는 2000년 전 팔레스틴으로 우리의 시선을 끌어 당긴다. 어린 죠수아는 아버지로 하여금 철저한 유대교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그러던 중 성인식 때문에 예루살렘에 올라 간 죠수아는 그곳에서 기성종교와 로마제국주의의 폭력성을 목격한다. 죠수아는 자라 아버지가 평생 해 오던 목수 일을 이어간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아버지의 죽음은 죠수아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그의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는 다시 그곳에서 로마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목격하고 민족주의자인 보아스와 함께 한다. 하지만 보아스의 폭력적인 민족주의의 성향 때문에 죠수아는 그의 곁을 떠나 여러 이교 국가로 순례를 떠난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수많은 신과 예언자들, 성인, 어리석은 사람들을 만난다. 또한 그는 이 순례길에서 살육과 배신을 경험한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과 고난은 그로 하여금 평범한 진리인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기존의 혁명이 분노와 폭력으로 이루어졌다면 죠수아는 '사랑'으로 혁명을 주도하려 한다. 이 일을 위해 시몬과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혁명의 첫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언제나 사랑은 이긴다."라는 죠수아의 말은 시몬과 그의 가족을 이 혁명에 동참하게 만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영화의 감독 '알렉산드로 탈라트리'는 기존 예수 관련 영화와 달리 예수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한 죠수아에게서 누미노제적인 분위기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단지 로마 식민지에서 소박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청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심지어 소경의 눈을 치료하는 장면조차도 죠수아에게서 신성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거기에는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손길이 아닌 인간의 따뜻한 손길만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로코코 의상을 입은 예수를 벗어 던지고 스탠드 글라스 너머에 있는 갈릴리 예수를 보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예수를 추상화시키려는 못된 버릇이 있다. 예수와 그의 어록을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것으로 만들어야만 종교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다. 아직도 루벤스의 영혼이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예수와 그의 어록이 지니는 종교적 매력이나 보편적 가치는 추상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체적이고 세속적인 것에서 더욱 더 분명해 진다.

 

우리는 이 사실을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서 접할 수 있다. 특히, '감자 먹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포장되지 않은 채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하루의 힘겨운 노동을 마치고 희미한 등잔불 아래 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농민들의 소박한 삶에 대한 반 고흐의 사랑과 존경이 인물의 경건한 표정과 동작에 스며 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로코코적인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작품에서 로코코 작품 보다 더 신비로운 종교성을 느낀다. 왜일까? 참된 아름다움은 평범하고 소박하며 세속적인 것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 <Garden of Eden>은 지나치게 화려한 '로코코의 예수'에서 소박하고 세속적인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수'로 우리의 생각을 전환할 것을 조용히 종용하고 있다.

 

* 오래 전에 본 영화입니다. 삭개오작은교회 성도님들과 영화의 감동을 함께 나누고자 글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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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은 2012.09.22 06:24

    마치 잘 팔기위해 온갖 치장과 꾸밈 포장을 한 모습을 벗어버린

     친근하고 익숙한 편안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진 예수님 모습을

    한참 바라 보았습니다.

    순수하고 해맑은 모습을 바라보는것만으로도 정신이 맑아지고 치유가 되는것 같습니다

    좋은글 나눠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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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등고래 2012.09.24 14:36

    영화소개 감사합니다. 언제 차분히 앉아서 영화감상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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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27 01:02

    저도 이 영화 꼭 한번 보고 싶습니다.나중에 성경공부 쉬는 주일에 다같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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